분열(Die Angst)
뭉크의 분열증 증세는 1890년 도라 라우젠과의 관계로 고민과 알콜에
의해 더욱 심화되어지기도 하는데, 공허한 듯하면서도 무엇의 의미를
찾으려는 듯 기묘한 눈을 크게 뜨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검은 옷을
입은 군상의 표정은 뭉크의 자주 다루어진 주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정면성正面性에 대하여 혹간 말하기를 분열병 심리에서의 표현성,
친화성이라도 강조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나, 뭉크의 근원적인
의문이나 불안이 이와 같은 일련의 작품을 창작토록 하였다고 할 수
있겠다. 저녁 놀을 배경으로 하여 나타난 산과 들에서의 곡선적 효과는
불안한 감정을 더욱 강하게 느끼도록 한다. 유화에서 뿐만 아니라
목판화에서도 동일한 내용의 표현을 많이 남기고 있다.
1894년 캔버스 유화 93 X 72cm
오슬로 뭉크 미술관 소장
죽은 사람을 누인 베드(Das Totenbett)
'병실에서의 죽음'과 깊은 연관을 갖는 듯한 계열의 작품으로
여기에서도 역시 고통, 죽음, 불안에 대한 내용을 시각화하고 있다.
여기에서 특이한 것은 대담한 콤포지션으로 왼쪽 상단 부분에 침대를
놓고 나머지 아랫부분은 빈 공간으로서 처리하고 실의에 찬 사람들을
오른쪽 부분으로 몰아 놓은 것이, 허탈한 공간감과 긴장된 중압감이
대비를 이루면서 표현되어지고 있다. 단조로운 색채와 강직한 형태감은
대담한 구도와 조화를 이루면서 상징적 표현 효과를 주고 있다. 드라마틱한
모습을 적절하게 나타내고 있으면서도 죽음을 둘러싼 허와 실, 공백과
실재의 대조적인 관계를 표현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간결하면서도
생략되어진 인물의 표정과 단조로운 필세는 희화화된 것처럼 단순화되어
보이는 것이 충격있게 전달되어지고 있다.
1900년경 캔버스 유화 100 x 110 cm
오슬로 뭉크 미술관 소장
마돈나(Madonna)
뭉크는 여자를 세 가지 상으로 보았는데 하나는 꿈꾸는 여인, 또 한편으로는
삶을 갈망하는 여인, 또 체념하는 여인이었던 것이다. 그는 이 '마돈나'에
나타난 여인에 대하여 "몸을 바치는 여자- 성모의 고통스런 아름다움에 싸인다."
라고 쓰기도 하고, "모든 세계의 움직임이 정지하는 순간, 너의 얼굴은 지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포함하고 있다. 익어가는 과일처럼 새빨간 너의 입술은 고통 때문이기도
한 것처럼 달싹 벌어진다. 그것은 시체의 미소이다. 바야흐로 삶이 죽음에게 손을
내민다. 죽어서 사라진 무수한 세대와 미래의 세대와의 사이에 인연이 맺어진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뭉크의 나이 30세이던 1893년 12월, 베를린에서 '생의 프리이즈' 연작,
'흡혈귀', '절규', '입맞춤', '질투'등의 연작을 발표하였는데 중심이 된 것은 이 '마돈나'
였다.
1894~5년 캔버스 유화 91 x 70.5 cm
오슬로 국립 미술관 소장
질투(Der Neid)
1896년 석판 46.5 x 56.5 cm
오슬로 뭉크 미술관 소장
베르겐의 자화상(Selbstbildnis)
자화상을 통하여 뭉크는 생의 불안을 극복하려 하였으며 자신의
인생 시리즈로 자기변천과 자아 의식을 찾으려 했다. 그가 말했듯이
자화상에는 "자아 자체를 그리지 않고는 성립되지 않는 이미지 표현의
진실성이 있다." 이렇듯 엄격한 양식에 자기애적 경향과 자의식에 찬
인물 자신을 표현하였다. 이 자화상을 제작할 당시 53세로서 예술가로서의
명성을 확고하게 지키고 있을 때였건만 어딘지 고독 속에 불안에 찬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돌아보고 있는 것을 인상파
풍의 속필로 묘사하였으며, 인물 뒤에 보이는 노르웨이 서해안의 도시 베르겐의
거리와 집들, 널따란 광장의 선명한 색채가 대조적인 변화를 준다. 풍경화에서
볼 수 없는 초조감이 엿보이고 있는 것이, 그의 정신 상태인 불안을 의적으로
투영시켜 주고 있다.
1916년 캔버스 유화 90 x 60 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