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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안미숙_게시판

소.박.한.아.름.다.움.(분청)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도자기가 상감청자라면


조선시대에는 분청사기와 백자를 꼽을수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자와 백자는 익히 알고 있지만,분청자(분청사기)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분청사기란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의 준말이다.
즉, 분장을 할수 있는 흙에 회청색의 유약을 발라서 구운 사기라는 뜻이다.





사기(沙器) 라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자기(瓷器) 대신에 쓰이던말로,
사기나 자기는 같은 사토(돌가루)이기에 분청자=분청사기, 자기=사기 라고 할수있는것이다.


조선시대 분청의 여러 특성중 가장 눈낄을 끌만한 것들중 하나는,


청자와 백자와는 다른 소박하면서도 무심하지않고, 구수하면서도 털털한..




그리하여, 보는이들로 하여금 주눅들지않는 그러한 어리숙한 아름다움이


도공의 자유로운 그림과,모양새에서 나타나 있는것이라 할수 있다.







분청의 매력중 하나인 추상(抽象-눈에 보이지 않는 사물의 내면에 숨어있는 보이지 않는 상을 뽑아 내는것.)
기법이 그림뿐아니라,우리의 도자기에서 나타나 있는것을 쉽게 찾아볼수있다.



순백자개구리 연잎발..이당作






도공의 그림은 화공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


도공의 그림은 무심코 그린 그림이다.


그것은 점으로,또는 선으로 나타날수도 있고, 형태 자체에서 나타날수도 있다.




그것이 분청이 지닌 매력중의 한가지인것이다.


그 때묻지 않은 자유로움. 그속에 숨쉬고 있는 조선 도공의 호방함과 익살스러움..






그 조선 도공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이당선생의 작업실을 찾아가보았다.






이천 신둔면 수광리의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중 가장 끝집.


나즈막한 산을 끼고 있어서 아래로는 수광리의 정겨운 풍경이 펼쳐져 있었고,


커다란 대추나무 한그루가 집안 앞마당에 시원한 그늘을 내려주고 있는곳.






조그만한 잡종개 한마리가 늘어지게 하품을 해대고 어슬렁거리며 느린걸음으로 사라져가고,


뒤에 풍채좋고 맘씨좋아보이는 혈색좋은 한사람이 웃으면서 반긴다.




"오랫만에 다시뵙니다"










이당 박철원선생은 경기도 이천태생으로, 그 빼어난 성형솜씨로 많이 알려진 작가이다.


그의작업실에 들어서면, 일단은 그의 화려한 경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된다.


전국 기능올림픽 금메달,수십번의 국전 입상,다기공모대전 대상..등등..






그러나, 그의 화려한 경력보다 더 사람을 끄는것은,
그의 분청과도 같은 소박하고 어눌한 말투와


뚝배기 처럼 은근하고 구수한 그의 사람됨이다.






나는 그의 작업실을 찾았던 날 우연히 그곳에 오신 한분의 스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분은 '무소유'로 유명하신 법정 스님이었는데,


강원도에서 잠시 내려오실때마다 ,
쑥개떡이나,인절미등을 사가지고 오셔서 차를 마시며,얘기꽃을 피우신다고 했다.






법정스님은 이당선생의 작품중 무엇을 좋아하시느냐는 질문에,


서슴치 않고 '다기'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당선생의 작품은 다른것과는 달라요..
물론 제가 도자기에 대해 잘아는것은 아니지만,
이당선생의 다기를 보면 차를 마시는 즐거움을 더욱 느낄수 있어서 좋습니다."라고 얘기하였다.








"도공이 작품을 만들때는 물론 솜씨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것은 그것을 만드는 도공의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만드는 사람의 마음이 그대로 옮겨지는것이기에

그는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항상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108배를 한다고 이당선생이 법정스님의 눈치를 보며 웃으며 말했다.






어찌보면 그의 불룩한 배와 사람좋아보이는 웃음속에 배인,
적당히 도도한 자신감은 그의 흙작업에 대한

진지함과
흙을 대할때의 경건함속에서 일구어진 분청의 그것과도 같아보였다.






그가 처음으로 흙을 접한것은 20세때..




집안사정상 여러가지일을 전전했던그는
어릴적부터 자연스럽게 보고 자라왔던 도자기에 자신도 모르는사이
도공의 길에 들어선것이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일런지도 모른다고한다.




그때만해도 지금처럼 여러기계들이 귀한터라,


흙을 발로 직접밟고 손으로 꼬막(꼬박)을 치고,
흔히들 하는말처럼


청소3년,꼬막밀기3년,그후에 물레를 닦고 근처에 가는것이 허락되었다한다.






"지금 그렇게 가르친다고 하면 아마 아무도 배우려고 하는사람이 없을겁니다.
요즘사람들은 쉽게만 배우려고 하기때문에 더 그런것 같아요.(웃음)"



그는 겸손한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들속에는 그의 겸손함이 묻어져나온다.






그는 구수한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들 속에서는 구수함이 살아있다.



그는 그의 다기에 음양오행의 원리를 적용한다.




자연의 이치를 자연의 일부인 사람에게 적용한다는것은 어찌보면 당연한일이겠지만,




그는 항상 세세한것 하나까지도 정성을 다한다.




항상 작품을 만들때에는 작가의 입장이 아닌, 작품을 사용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만든다.






손으로 하나하나의 찻잔을 만들고,그 찻잔이 완성되면
그잔에 입술을 일일히 대어본다.




입술이 닿는 위치가 편안해야 차를 마시는 즐거움이 배가 된다며,

번거롭기만 그일을 아직도 씩씩(?)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한 중노동의 결과라서 그런지 그의 다기는 다소 비싼것이 흠이다.






그러나 가격을 알기전에도 그의 작품은 보는이의 눈이 즐겁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진정으로 아끼는 작가이다.



대부분의 도공들이 마음에 안드는 작품을 눈물을 머금고 깨어버리는것에 비해


그는 그것을 차마 버리지 못한다.






"깨어지고 못생겼다고 내자식을 버릴수는 없는거지요..
이것들은 다 내자식인걸요"





찾아온 손님에게는 멀쩡한 찻잔에 차를 따라주면서 정작 자신은 깨어진 잔에 차를 마시곤한다.






그의 작품중 다기이외에 눈길을끄는것은 백자무지항아리(달항아리라고도한다)이다.




티끌하나 튀지않은 순백색 항아리의 유연한 곡선하며,

그 뭉퉁한 배의 여유로운 자태.




그가만든 편안하고 자유로운 분청작품들과는 또다른 멋이 풍겨나온다.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동안 법정스님이 사오신 쑥개떡 그릇이 비어지고,

연녹색 차잎의 빛또한 닳아져갔다.





마지막 찻잔에 물을 따라 백차를 마시니,(백차:차를 다마신후 찻잔에 맹물을 부어 잔속에 남아있던 차의 여운을 즐기는차)

그곳을 자주 들리는 낯익은 이름이 적어놓은 글이 보였다.




글을써놓고 간이도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을 한모양이다.


보는 눈은 하나라는 말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이당의 작품에는 조선도공의 맥이 흐르고 있다.....!










-아름다운 찻잔-






내집과 작업실에 있는 몇안되는 다기들은 모두 이당선생의 작품이다.




이당 선생을 내게 소개해준이는 법정스님이시다.






강원도 원두막에서 시내로 나오실때 가끔씩 이천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 들러

마음에 드는 찻잔들을

하나씩 가져다 주신것이다.






그것들은 단순하되 기품이 있고,소박하되 은근한 화려함을 지니고 있었다.






어느핸가는 바닥에 작은 국화무늬를 새겨놓은 찻잔 한벌을 선물 받았는데,




얼마후 이당선생을 만났을때 나는 전문가도 아니면서 감히 이렇게 말할수 있었다.




"이제 대가가 되셨더군요"




그러자 그는 시골사람처럼 웃으면서 말하는것이었다.



"그것들은 내가 만든것 같지않아요.

무엇인가가 나를 통해 그것들을 만든것 같아요"







작품을 만들때 어느덧 그가 자신을 모두 비워버렸음을 느낄수 있었다.



빈잔 하나를 만들려고 해도 먼저 자신을 비워야 할것이다.




모든일이 이처럼 하나의 자기수행에 다름아니다.





그의 아름다운 찻잔들을 바라보는 즐거움때문에

나는 전보다 더 차마시는 일을 가까이 하게되었다.


그해 겨울에는 인도 여행을 떠나면서 그 국화무늬 찻잔을 가지고 갔다.




그래서 갠지즈 강변에서도 차를 마시고,



히말라야 산중에서도 그 찻잔으로 다르질링 차를 마셨다.






- 류시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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