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누이를 사랑하고,자신의 누이를 통해 여성 누드의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던 화가 에곤 쉴레 (Egon Schiele? 1890∼1918)는 세기말 유럽의 우울한 자화상처럼 미술사 속에 자리하고 있다. 짧았던 단 한번의 결혼과 떠도는 영혼의 안식처를 찾아 수많은 여성들을 거친 세월 속에서 만났던 광기의 천재는 자신의 비참한 생과 맞바꾼 보석 같은 인체 누드화를 우리에게 선사하고 있다.
그의 그림에서 보여지는 특징으로 우선 대담한 포르노그래피적 발상을 들 수 있다. 웬만한 사람들조차 상업적 포르노에 노출된 생활을 하고 있는 요즈음 아직도 쉴레의 그림은 보는 이로 하여금 경악을 금치 못하게 만든다. 기이한 인체의 해석과 탄탄한 데생력이 혼합된 그의 인체 표현은 포르노그래피적 포즈와 더불어 인간 존재의 허무감을 강하게 느끼게 만든다.
또한 기존 그림의 형식을 완벽하게 거부하는 그의 작화법은 화가의 심리를 전이시키는 강력한 표현어법으로 사용되면서 당시 유럽 화단의 이단자로 취급되기에 충분한(?) 조건을 스스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가 현실에서 보여준 ‘사랑’의 방식은 당시나 지금이나 공론화시키기에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파격으로 일관되어 있다.
이성간의 사랑을 자신의 누이로부터 확인한 쉴레는 평생을 거치면서(후세 미술사학자들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사생아로 방치한 아들과 정부 역할을 넘어선 관계의 여인들로 28살의 짧은 생애를 가득 메우고 있다.
쉴레의 뛰어난 누드화는 그러한 화가의 문란(?)한 삶의 방식이 가져다 준 우연의 결과였는지 모른다.
그가 새롭게 눈 뜬 여성 신체-누드화는 자신의 완전한 사랑이었던 그의 누이 게르티(Gerti)로부터 시작된다. 화가로서의 삶에서 상당히 뒤늦게 시작한 여성 누드에의 천착은 완전히 게르티의 공로로 돌릴 수 있다.
게르티는 쉴레가 요구하는 천박한 포즈 때문에 누드 모델을 구할 수 없었던 그에게 기꺼이 모델이 되어 주었던 누이였고,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쉴레에게 화가로서 자긍심을 갖도록 도와주었던 정신적 후원자였다.
‘팔을 들고 앉아있는 누드’는 쉴레의 초창기 누드화 중 하나다. 추정컨데 이 당시 모델을 구해 작업을 할 수 없었던 그의 생활을 볼 때 이 모델은 게르티로 추정된다.
게르티를 그린 그림들은 그가 삶을 마치기 5∼6년 전부터 자신의 삶을 스스로 파국으로 몰고가면서 사귀게 되었던 직업여성들과의 관계 이전에 쉴레의 누드화 전부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 누이에게 화가는 일말의 애정을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서늘한 존재의 몰가치를 한 여성의 몸으로부터 건져내 표현하고 있다.
섬뜩한 이 화가의 눈과 손은 이러한 그림의 풍으로 인해 쉴레 사후 약 40여년간 오스트리아에서조차 일반 공개를 꺼려 미술관과 박물관의 수장고에 처박혀 지내는 수모를 겪게 된다.
쉴레에게는 게르티를 제외하고 또 하나의 중요한 여성이 한 명 있었는데 그녀는 짧은 결혼생활을 통해 순수한 여성성을 발견케 해준 에디스(Edith)였다.
쉴레는 3점의 초상화를 통해 그녀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기록해 놓고 있다. 그림에서 보이는 에디스는 마치 수태의 경험과 섹스의 경험이 없는 순수함의 결정으로 묘사되어 있다.
아마도 1912년 음란한 그의 그림이 문제가 되어 경찰에 연행,구금되었던 자신의 인생역정을 통해,그리고 게르티와의 관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던 자신에게서 순간이나마 성적 일탈을 가능케 했던 에디스의 모습은 여타의 누드화에서 보여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의 대척점에 서 있었던 것이다.
1914년 쉴레는 그의 화업에서 무척 중요한 누드모델을 한 명(성명 미상의) 만나게 된다. 게르티로부터 얻은 영감을 통해 그는 여성성의 묘사에 있어 늘상 소녀적인 인체에 과장된 여성 생식기를 덧붙이는 기이한 형상을 그려왔었다.
그러나 게르티 못지 않은 과감한 성적 포즈를 취해준 새로운 여성 모델을 통해 쉴레는 성숙한 여성의 인체 묘사를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여성성의 묘사란 쉴레에게 있어 가식으로 덮인 빈의 일상을 통렬히 비판하는 하나의 무기일 뿐이다. 그럼으로 그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여성의 생식기는 포르노그래피를 빌려 거대 남근의 역설을 보이는 데 치중한다.
따라서 자신의 누이에게조차 포르노그래피로 설명하는 생식기를 부여했던 쉴레의 여성 누드화를 통해 우리는 모더니즘 시대의 서막을 예감하고 있던 당시 유럽사회의 환영을 진실 이상으로 확연히 느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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