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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안미숙_게시판

고흐의 편지 (7) - 베르나르에게

고흐의 편지 (7) - 베르나르에게



요전번에 급히 자네를 뿌리치고 헤어진 것을 사과하려 한다.

이 편지에서 우선 그것을 밝혀 두고자 한다. 부디 톨스토이의 <<러시아 전설>>을 읽는 것이 좋겠다. 전날 이야기한 들라크루아에 관한 기사를 곧 발견할 것이다. 밤이 되어서 나는 역시 기요만의 집을 방문했다. 혹시 자네는 아직 그의 주소를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앙주 강가 13번지이다. 기요만이라고 하는 사나이는 다른 친구들보다는 훌륭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다른 친구들이 모두 그와 같다고 하면, 서로 다투지 않고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도 않으며 좋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 틀림없다.

나는 한가지 확신을 품고 있다. 그렇다고 자네를 나무랐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 그리고 자네도 아마 동감하리라 생각하는데, 아틀리에에 있는 것으로는 그림 공부는 말할 것도 없고, 생활을 할 수 있는 길조차도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니 아무래도 생활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진부한 방법이나 속임수 없이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안된다. 자네의 자화상은 자네의 얼굴과 똑같지만 잘되었거나 최선을 다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요전번에 자네에게 설명하려고 한 이야기로 되돌아가기로 하자. 일반론을 피하여 실례(實例)를 들어보겠다. 만일 자네가 어떤 화가와 사이가 나쁘고, 그 결과 "시냑이 만일 거기에 출품한다면 나는 그림을 철회하겠다."고 난색을 보인다면 자네 태도도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와 같이 분명히 잘라 말하기 전에 잘 관찰하고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한바탕 싸움을 일으킨 경우, 생각해보면 우리들 쪽에도 상대와 같은 잘못이 있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고 우리가 가지고 싶다고 바라는 듯한 정당한 이유를 상대도 또한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시냑이나 데생을 하는 친구가 때로는 그 방법으로 매우 좋은 작품을 그렸다고 생각하면 헐뜯지 말고, 싸움을 일으켰을 때에라도 상대를 믿고 호의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파벌적으로 마음이 좁은 인간이 되어서 타인의 가치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고 자기만이 옳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이야기는 아카데미 회원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팡탕 라투르의 그림은 그 작품 전체를 대할 때, 틀림없이 그는 반항할 줄을 모르는 인간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이 도리어 그 조용하고 정확한, 지금 살아있는 예술가 가운데는 가장 뛰어난 독특한 화풍을 이루고 있는 원인이 된다.

다음에는 앞으로 병역에 종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자네에게 한마디 해두겠는데, 지금부터 잘 조사해놓을 필요가 있다. 우선 이런 경우, 임지에서도 그림을 계속할 수 있을지 어떨지 직접 문의해 보는 것이 좋다. 주둔지를 선택할 수 있을지 어떨지 따위 등도……. 또한 넌지시 어느 정도라도 자네의 건강에 지장이 없는지 어떤지도 물어보는 것이 좋다. 만일 자네가 지금보다도 튼튼해져서 제대할 생각이라면 너무 비관하거나 초조해 하면서 입대하지 않도록 마음을 써야한다.


자네가 입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자네를 위해서는 그리 불행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하나의 큰 시련일 뿐, 문제는 자네가 위대한 예술가가 되어 거기에서 나오게 될지 어떨 지에 걸려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 몸을 될 수 있는 대로 튼튼히 하고 신경을 굵게 해야 한다. 만일 그 동안에 많이 그릴 수 있다면 작품의 재고량이 어느 정도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든지 팔도록 힘쓰겠다. 자네도 모델을 고용할 돈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으니까.

그 회장에서 전람회가 시작되었는데, 성공을 거두도록 나도 힘껏 일해볼 생각이다. 그러나 성공으로의 첫째 비결은 작은 질투심에 가능한 한 갇히지 않는 일이다. 단결만이 힘이다. 공통된 이익은 자기 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개개인의 이기주의를 희생함으로써 비로소 확보된다.

자네에게 굳은 악수를 보낸다.


1887년 여름 르피크 가 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