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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안미숙_게시판

밀레













<만종 1857 >



<이삭 줍기>와 함께 밀레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 밭에서 일을 끝내고 저녁 종이 울리는 가운데 부부가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이 장면은, 단순히 노동에서 오는 기쁨뿐만 아니라 삶의 진실과 기쁨을 전해주고 있어 쉽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수 있었다. 먼 지평선에 황혼이 물들어 가고,

이 빛을 받은 부부의 경건한 자세는 종교적인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종교화의 새로운 양식이라고 칭송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작품은 처음 1천프랑에 국외로 팔려 나갔으나, 많은 사람의 손을거쳐 다시 프랑스로 팔려 왔을 때는 그 8백 배가 되는 80만 프랑으로 올랐다는데도 이 그림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다. 1906년에 루브르에 기증되었다.





<이삭줍기 Les Glaneuses 1857>



밀레의 <이삭줍기>는 <만종>과 더불어 밀레 최고의 걸작품으로 꼽힌다. 밀레가 [이삭줍기]를 [살롱]에 발표했을 당시 사람들은 이 작품의 주제가 농부들의 힘들고 고된

일상이라는 것을 바로 이해했다. 극빈한 하층 계급과 귀족, 신흥 부르주아 사회 계층의 불균형 속에 밀레는 부유하고 권력적인 지식층보다는 반복적인 노동에도 불구하고

빈곤한 농부의 삶을 화폭에 담고자 한 것이다. 당시 시대적으로 마르크스의 영향 아래

많은 리얼리스트들이 사회 비판적 성향의 그림을 그렸으나 밀레가 그린 농촌 풍경들은 이러한 비판보다는 성스럽고 종교적인 숭고미가 드러난다. <이삭줍기>는 수확 물이 풍성하게 쌓인 넓은 대지에 허리를 굽혀 이삭을 줍고 있는 세 농촌의 여인들을 표현했다. 이 여인들은 부드러운 햇살이 비치는 황금 들판 속에 단순하면서도 견고한 형태와 색상으로 부각되어 있다. 왼편의 두 여인은 자신들의 노동에 묵묵히 몰두하고 있고, 오른쪽 여인은 약간 떨어져 허리를 반쯤 세우고 있다. 세 여인의 일련의 정지된 듯한 동작은 모노톤 배경과 더불어 시간을 초월한 듯 마치 성서의 한 장면인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조화롭고 안정된 구도화 갈색 톤의 자연적인 색채 속에서 부드러운 빨강,

파랑, 노랑의 대비는 고전적인 성화를 연상시킨다. <이삭줍기>에서 밀레는 가난하고

힘든 현실 속에서의 노동을 성스러운 침묵과 평화로 승화시키고 있다. 여인들의 사실적인 거칠고 남루한 복장과 빛과 덩어리로 표현된 뒷 배경은 사실주의에서 인상파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양치기 소녀와 양떼 1863>



밀레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가에서 자랐을 뿐 아니라, 화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할 무렵 농가에 들어가 생애를 농민 화가로서 보냈다. 이 깊숙한 농민 생활의 체험은

그의 그림을 더욱 생생하게 만들고 있는데, 멀리서 바라보는 객관적인 입장이아니라

언제나 모티브 깊숙이 들어가 있기때문이다. 말하자면 몸으로 부터 우러나온 자연스러움이 그림 속에 배여 있다. 어린양치기의 모습과 양떼의 조화는 순진한 이미지의 동일성에서 밀레의 화인(畵因)을 자극한 것이 분명하다. 풀을 뜯고 있는 양들의 모습과

지팡이에 기댄 어린 양치기의땅과의 밀착된 관계가 돋보인다.







<젊은 여인. 1844-45>



1845년경 밀레는 목가적인 연인들을 테마로 한 몇 점의 작품을 그렸다. 이 작품도 그러한 목가적(牧歌的) 분위기를 띠고 있는 그림이다.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현실보다는 신화에 가깝다. 무언가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입과 반쯤 뜬눈의 꿈꾸는 듯한 표정이 더욱 그런 분위기를 나타낸다. 초기의 초상화에서 볼 수 있는 단정하고도 엄격한 수법을 엿볼 수 없고, 터치가 즉흥적이면서 다소 거칠게 나타나 있다. 일련의 누드화에서도 그렇지만, 밀레의 눈은 호색적(好色的)이지 않다. 그가 나중에 로코코 화가들을 특히 호색적인 면에서 비판하고 있음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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