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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탈미술학원

압록강은 흐른다



Array 이미륵 박사 소개  
이 책을 읽는 분에게

1898년 이 땅에 독일어가 공식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다음』
(1899) 이 미륵은 황해도 해주에서 평범한 시민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어린 그는 시골에서 한학을 수업했고, 18세부터는
서울에 올라와 경성의학 전문학교에서 독일어도 배워 훗날 윈헨대학교에서 이학』사 학위까지 취득하였으나
글을 써야만 했던 것은 그에게 절실한 욕구였다고 한다.
독일의 신문과 문예지에 한국을 소재로 한 그의 글이 심심치 않게 실렸던 1930년대 초엽부터
우리의 전통문화가 서방세계에 빠른 속도로 전달되었음은 기록 문헌들이 잘 증명해 주고 있다.
따라서 "독일인들에게 우리의 얼과 문화를 어떤 외교관보다도 더 마음을 깊이 넣어준 사람" 이라는 평을 받게 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문학적으로 성장한 그는 대표작 (압록강은 흐른다, Der Yllu fliest)』1846년에 윈헨의 피퍼 출판사에서 처음 발간하였고,
1950년 6.25동』직후 재판, 현재는 독일에서만 해도 6판까지 나와 있으며, 최근에는영문판, 불어판까지도 나와 있다.
그리고 우리말 번역은 지금은 고인이 된 전 혜린 여사의 손으로 1959년에 처음으로 소개되었으며,
또 몇 분에 의해 번역 출간되어 우리나라에서는 올해로 꼭 40년 동안이니호평을 받으며 애독되고 있는 작품이다.
이토록 이 자전소설이 한국독자들의 애호와 찬사를 받는 것은 그 내용이 곧 우리의 추억이자 역사요,
피부로 느끼는 우리의 생활이기 때문이다. 이 미륵 박사가 윈헨 교외에서 1950년, 51세의 젊은 나이로 타계한

10여 년 후 역자는 바로 그분께서 공부하셨고 문학 활동을 했던 윈헨에서 유학하게 되었다.
당시 서울에 생존하셨던 이 미륵 박사의 누님이보내주신 글을 갖고 피퍼 출판사로부터 역자가 판권을 받게 된 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이 박사의 여러 독일 친구들로부터 많은 자료들과 유고들을 입수할 수 있었다.
그 중에는 여기에 함께 소개하는 (그래도 압록강은 흐른다)와 (무던히) 외에도 많은 서간문들과 사진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유고로 남아 있었던 (무던히)은 이 미륵 박사가 타계하고 2년 후인1952년 독일의 유명한 』
아틀란티스, Atlanti뀨라는 문예지의 8, 9호에 연재된 바 있다.
이 중편소설은 한국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던 독일인들에게 옛 코레아를 소개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신문명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순진하고 소박하게 성장했던 한국의 시골 여인상은 서구인들에게 매우 생소하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1944년 이 미륵은 피퍼 출판사와의 계약에서 (압록강은 흐른다)의 속편도 써서 발표하기로 약속하고,
그 2부와 3부를 대부분 탈고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를 덮친 치명적인 병세와 좌절감 때문에 속편의 원고와 자료들이 대부분 소각되었다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가 이 옥고들을 왜 불태워 버렸는지, 이것은 이 미륵 혼자만이 간직하고 있었던 비밀로서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슬프게 하였다.
1973년 봄 어느 날, 역자가 아직 독일에 체류하고 있을 때 놀랍게도이미륵의 유고 뭉치를 받게 되었다.
작가는 원고들을 독일어로 집필하여 놓고 세상을 떠났지만, 물론 그 창작 경위나 탈고 연대 등은 아직도 정확히 알 길이 없다.
이 원고들은 베커 여사 (작가의 동창 되는 분의 숙모)가 타계하고 난 직후 그녀의 질녀인 자르토리우스 박사와 실러 박사
(두 분 다 윈헨대 동기 동창)을 통해 역자의 손에 입수되었던 것이다.
이 원고 뭉치에는 (실종자), (탈출기), 그리고 (그래도 압록강은 흐른다)가 들어 있었다.
이 마지막 부분이 바로 (압록강은 흐른다)의 속편 중 그 일부로서 작가가 독일 문화권에 접하여 투병하며 힉

문에 열중하는 대학생활이 중심으로 되어 있다.
왜 이 원고들이 베커여사의 장농 속에서 불쑥 튀어나왔을까?
도무지 그 사연을 이해할 수없다는 것이 그의 친구나 제자들의 말이다.
여기에 소개되는 (실종자)는 주로 왜정 치하라는 역사적인 배경하에자기 자신의 가정을 둘러싼 제반 사건들을 엮은 것이고,
(탈출기)는작가 자신이 3 1운동에 가담했다가 어머니의 보호로부터 벗어나서 압록강을 건너 탈출하여 유럽으로 건너가는 여행기이다.
그리고 (그래도압록강은 흐른다)는 선풍적 인기를 모은 (압록강은 흐른다)의 속편의 일부분일 뿐 나머지는 소실되어 아쉽기만 하다.
(압록강은 흐른다, DerYlluflieB릊 이외의 작품들은 모두 유고로서(이야기, Iyagi),
(그래도 압록강은 흐른다, tomyllubiszu,Isa,), (이상한 사투리, DerandereDialekt)로 명제되어 나왔으니 독문으로는 4권의 책이 나와 있는 셈이다.
잘 알려진 바대로 이 미륵의 미문(볶◎)들은 아직도 독일의 중,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원문으로 애독되고 있다.
이번 번역 작품들도 독자들이 원문으로 읽으면 그 소박하고 간결한 표현법과 친근감이가는 작가의
유년시절을 실감할 수 있을 텐데 역자의 번역이 원문에 얼마나 충실히 접근했는지 걱정도 된다.
이미륵은 경성의학 전문학교 학생시절 일제의 탄압과 그 밑에서 통곡하던 우리 민족의 자학과 좌절감을 목격하면서
왜경을 피해 조국을 떠난 청년이었다.
30년이라는 그의 독일생활은 그리움, 향수, 추억, 비애, 우수 등으로 엇갈려 있었다.
그래도 그는 이 이국땅에서 새로운 지표를 세우고 대학생으로서, 한국인으로서, 작가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활동하였다.
그가 독일생활 속에서 서구인들에게 보여준 휴머니즘과 인간상은1950년 그의 타계와 더불어 재평가되었다.
즉 그를 사랑하던 그의 벗들은 그의 돋보이던 휴머니즘과 인간미를 여러 독일 신문들과 조사(루끓)에서 웅변적으로 예찬하였다.

1950년 3월 24일, 그것은 이 미륵의 장례식 날이었다.
자리를 잘이 했던 약 200여 명의 조문객들은 눈물을 흘리며 '위대한 한국의 아들'의명 복을 빌었다고 한다.
이 미륵은 그의 생활이나 작품에 휴머니즘으로 시종일관하고 있다.
그의 모든 작품세계의 저변에 흐르는 주제는 한결같이 휴머니즘을 벗어난 것이 거의 없다.
민족주의적인 의식이나 윤리 관념이 구체적이었듯이, 그의 생활과 문학도 본질적으로 인간에 대한 애정과 인류에 대한 동경에 기반을 두고 있다.
특히 그의 따뜻한 인간애와 겸손한 생활자세는 휴머니즘의 선언이기도 하다.
그는 언제나 전통이나 인간을 부정하거나 절망적인 태도로 관망하지 않았다.
이러한 이 미륵의 생애에 충격을 준 것은 첫째 일본의 침략과 망명이었으며, 둘째로는 그가 독일에서 려은 제2차 세계대전과 나치의 출현이요, 셋째는 그를 덮친 병마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 자신 속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갈등이나 대립을 적절히 처리하고'해결하면서 주위에 있는 독일 친구들을 감동시켰다.
금년은 이 미륵 박사 탄생 99주년이 되는 해요, 내년은 그가 타계한지 49년이 되는 해이다.
역자는 몇 년 전 독일에 들러 고인의 묘지를 다시 보수했으며, 작년에는 우리 정부의 보조로 묘소를 옆에 있는 넓은 공간으로 이장하고,
묘비 등 제반 성물을 한국에서 가져다가 한국식 묘소로 단장하였다.
요즘은 독일에 유학 가는 학생들이나 여행자가 많아 이 묘지를 참배하는 한국인의 수도 많이 늘었다고 하니 듣기에도 흐뭇한 일이다.
또한 남북간의 교류가 기대되는 요즘 북한에 남아 있을 유족들이 머지않아 고인의 묘소를 참배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1998년 8월 이 미륵 탄생 99주년을 기념하여
옮긴이 정 규 화

Array h: h -[11/14-20:44]-
Array zz: 내용 않좋타 ㅠㅠ 모야 ㅠㅠ -[08/23-10:28]-
Array -ㅁ-;;: 느낀점을 원했는데용 -[10/04-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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