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편지 (10) - 베르나르에게
(이 서한은 빈센트가 발작 후 생 레미의 요양소에서 요양 중에 쓴 것이다.)
자네가 나의 그림을 보러 오겠다고 하는 소식을 어제 동생으로부터 들었다. 그래서 파리로 간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그림을 보러 오겠다니 무척 기쁘다.
자네가 퐁 타벤에서 무엇을 가지고 왔는지 무척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도무지 편지를 쓸 만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 고갱이나 자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어서 크나큰 공허감을 느낀다.
여기에 아직 12점의 습작이 있는데 이것들이 이번 여름에 동생이 보여준 그림보다는 더 자네 취향에 맞으리라 생각한다.
이 습작 풍에 채석장 입구를 그린 것이 있다. 일본 그림에 있는 것처럼, 붉은 흙으로 둘러싸인 엷은 라일락 빛깔의 바위이다 데생이나 커다란 면으로 구획한 색채로 퐁 타벤에서 자네가 한 것과 아주 닮았을 것이다.
이들 습작을 그렸을 때에는 건강도 회복되고, 옛날보다 마음이 안정되었다. 일구어놓은 라일락 빛깔의 경작지와 화면 위쪽에 닿는 산악을 배경으로 한 30호짜리도 한 점 있다. 그 곳은 황무지와 암석과, 구석 쪽에 엉겅퀴와 시든 풀과 버섯밖에 없고 보랏빛과 노란빛으로 채색된 작은 사내가 한 명 있을 뿐이다.
이것으로 내가 아직 의기 소침해 있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은 너무나도 좁은 곳이다. 막연한 사실이 아닌, 진짜 프로방스 지방의 풍토에 내재하는 성격을 분별하기란 너무 어렵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내를 갖고 일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 어느 정도 추상화되기도 한다. 태양과 푸른 하늘에 박력과 빛남을 주고, 타는 듯한 대지에서는 - 때로는 우울한 듯한 - 풀의 미묘한 향기를 풍기지 않으면 안된다.
이곳 올리브 나무는 자네 작품의 좋은 제재가 될 것 같다. 희고 커다란 태양 아래의 오렌지가 가벼운 보랏빛을 띤 대지 위에서는 은빛이다. 그러나 아직 아무도 이런 것을 그린 일은 없다. 그 대신에 몇 명의 예술가는 - 예컨대- 사과나 버드나무로는 성공하고 있다.
포도밭을 그린 작품도 비교적 적고, 이처럼 변화 무쌍한 아름다움을 지닌 것도 보기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 곳에서 하고 싶은 것은 아직 많이 있다.
만국박람회의 각 국민의 주거 환경을 보지 못한 것은 매우 안타깝다. 분명히 가프니에나 비올레 르뒤크가 계획했을 것이다. 자네는 보고 왔으리라 생각되는데, 초기 이집트의 집 밑그림에 색채를 넣어 보고 어떤 것인지 알려주지 않겠는가? 그것은 매우 간소하고, 틀림없이 토대 위에는 정방형의 덩어리가 있을 뿐인 것이겠지만 빛깔을 알고 싶다.
기사에는 파랑, 빨강, 노랑이라고 실려 있었는데, 자네가 보기에도 진짜 그러한지 꼭 가르쳐 주게. 그리고 페르시아든가 모로코의 것과 혼동하지 말기를. 아주 비슷하긴 해도 그것과는 다르니까.
건축 중에서 내가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가무스름한 난로가 있는 이끼 낀 초가지붕의 집이다. 그러므로 나는 까다로운 사람이리라.
책의 삽화에서 고대 멕시코인의 주거 밑그림을 보았는데, 역시 원시적인 것으로 아름다웠다. 아아! 만일 그 무렵의 일을 알고, 그 당시 생활하고 있던 사람을 그릴 수 있다면 밀레와 같이 신날 것이다. 색채적인 면에서가 아니라 성격적으로 확신을 가지고 그 내용을 자세하게 그릴 수만 있다면.
입대하기 위해 자네가 언제 출발하는지 알고 싶군.
11월의 가을에 그린 작품을 발송하겠으니 보러 와주지 않겠는지. 그리고 가능하면 브레타뉴에서 자네가 가지고 돌아온 것을 알려주게. 자네가 스스로 제일 자신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싶으니.
머지않아 다시 편지하겠다.
골짜기가 큰 그림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네한테서 받아 가지고 있는 노란 나무의 습작과 꼭 닮은 제재인데, 매우 단단한 두 개의 바위 아래로 가는 물줄기가 흐르고 있고 세 번째 산은 골짜기를 막고 있다.
이와 같은 제재에는 우울한 아름다움이 있고, 이런 야성적인 곳에서 일을 하는 것은 정말로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바람 때문에 쓰러질 것 같은 이젤을 돌 속에 꽂아 고정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악수를 보낸다. 모든 것을 자네에게.
1889년 10월 초순 생 레미
(이 서한은 빈센트가 발작 후 생 레미의 요양소에서 요양 중에 쓴 것이다.)
자네가 나의 그림을 보러 오겠다고 하는 소식을 어제 동생으로부터 들었다. 그래서 파리로 간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그림을 보러 오겠다니 무척 기쁘다.
자네가 퐁 타벤에서 무엇을 가지고 왔는지 무척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도무지 편지를 쓸 만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 고갱이나 자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어서 크나큰 공허감을 느낀다.
여기에 아직 12점의 습작이 있는데 이것들이 이번 여름에 동생이 보여준 그림보다는 더 자네 취향에 맞으리라 생각한다.
이 습작 풍에 채석장 입구를 그린 것이 있다. 일본 그림에 있는 것처럼, 붉은 흙으로 둘러싸인 엷은 라일락 빛깔의 바위이다 데생이나 커다란 면으로 구획한 색채로 퐁 타벤에서 자네가 한 것과 아주 닮았을 것이다.
이들 습작을 그렸을 때에는 건강도 회복되고, 옛날보다 마음이 안정되었다. 일구어놓은 라일락 빛깔의 경작지와 화면 위쪽에 닿는 산악을 배경으로 한 30호짜리도 한 점 있다. 그 곳은 황무지와 암석과, 구석 쪽에 엉겅퀴와 시든 풀과 버섯밖에 없고 보랏빛과 노란빛으로 채색된 작은 사내가 한 명 있을 뿐이다.
이것으로 내가 아직 의기 소침해 있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은 너무나도 좁은 곳이다. 막연한 사실이 아닌, 진짜 프로방스 지방의 풍토에 내재하는 성격을 분별하기란 너무 어렵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내를 갖고 일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 어느 정도 추상화되기도 한다. 태양과 푸른 하늘에 박력과 빛남을 주고, 타는 듯한 대지에서는 - 때로는 우울한 듯한 - 풀의 미묘한 향기를 풍기지 않으면 안된다.
이곳 올리브 나무는 자네 작품의 좋은 제재가 될 것 같다. 희고 커다란 태양 아래의 오렌지가 가벼운 보랏빛을 띤 대지 위에서는 은빛이다. 그러나 아직 아무도 이런 것을 그린 일은 없다. 그 대신에 몇 명의 예술가는 - 예컨대- 사과나 버드나무로는 성공하고 있다.
포도밭을 그린 작품도 비교적 적고, 이처럼 변화 무쌍한 아름다움을 지닌 것도 보기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 곳에서 하고 싶은 것은 아직 많이 있다.
만국박람회의 각 국민의 주거 환경을 보지 못한 것은 매우 안타깝다. 분명히 가프니에나 비올레 르뒤크가 계획했을 것이다. 자네는 보고 왔으리라 생각되는데, 초기 이집트의 집 밑그림에 색채를 넣어 보고 어떤 것인지 알려주지 않겠는가? 그것은 매우 간소하고, 틀림없이 토대 위에는 정방형의 덩어리가 있을 뿐인 것이겠지만 빛깔을 알고 싶다.
기사에는 파랑, 빨강, 노랑이라고 실려 있었는데, 자네가 보기에도 진짜 그러한지 꼭 가르쳐 주게. 그리고 페르시아든가 모로코의 것과 혼동하지 말기를. 아주 비슷하긴 해도 그것과는 다르니까.
건축 중에서 내가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가무스름한 난로가 있는 이끼 낀 초가지붕의 집이다. 그러므로 나는 까다로운 사람이리라.
책의 삽화에서 고대 멕시코인의 주거 밑그림을 보았는데, 역시 원시적인 것으로 아름다웠다. 아아! 만일 그 무렵의 일을 알고, 그 당시 생활하고 있던 사람을 그릴 수 있다면 밀레와 같이 신날 것이다. 색채적인 면에서가 아니라 성격적으로 확신을 가지고 그 내용을 자세하게 그릴 수만 있다면.
입대하기 위해 자네가 언제 출발하는지 알고 싶군.
11월의 가을에 그린 작품을 발송하겠으니 보러 와주지 않겠는지. 그리고 가능하면 브레타뉴에서 자네가 가지고 돌아온 것을 알려주게. 자네가 스스로 제일 자신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싶으니.
머지않아 다시 편지하겠다.
골짜기가 큰 그림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네한테서 받아 가지고 있는 노란 나무의 습작과 꼭 닮은 제재인데, 매우 단단한 두 개의 바위 아래로 가는 물줄기가 흐르고 있고 세 번째 산은 골짜기를 막고 있다.
이와 같은 제재에는 우울한 아름다움이 있고, 이런 야성적인 곳에서 일을 하는 것은 정말로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바람 때문에 쓰러질 것 같은 이젤을 돌 속에 꽂아 고정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악수를 보낸다. 모든 것을 자네에게.
1889년 10월 초순 생 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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