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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안미숙_게시판

고흐의 편지 (3) - 테오에게

고흐의 편지 (3) - 테오에게


테오와 조.

요전번의 편지에서 이 곳 주소를 알려주는 것을 그만 잊었다. 이 곳 주소는 '읍사무소 앞 광장, 라브 댁'이다. 그런데 전번에 편지했을 때에는 아직 아무 것도 손대지 못하고 있었던 상태였다. 지금은 낡은 초가지붕의 습작이 있는데, 앞쪽 면에는 꽃이 핀 콩밭이 있고, 배경은 언덕으로 되어 있다. 틀림없이 네 마음에 들 습작이다.

벌써 느낀 일이지만, 남프랑스에 갔던 덕택으로 북쪽 지방의 것을 잘 알게 되었다.


보랏빛이 내가 상상하고 있던 대로 더욱 돋보이게 되었다. 과연 오베르는 멋진 곳이다.

캔버스 때문에 여러 가지 비운을 만날 것을 예감하더라도 제작하는 편이 제작하지 않는 편보다는 훨씬 좋으리라 생각한다.

이 곳은 색채가 대단히 풍부한데, 나의 취미에 맞는 빌 다브레이 등보다도 더 아름다운 상류의 별장이 있다.

일본풍의 그림을 그리는 데무랑이 여기 살았던 모양이지만, 지금은 없다. 만일 주말까지 송금해 준다면 그 때까지는 어떻게든 유지될 수 있겠지만, 그보다 더 늦으면 도저히 안된다.

네게 괴로움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면 캔버스도 10미터 보내주기 바란다. 하지만 월말이어서 곤란할 것 같으면 앵글 목탄지를 스무장 보내다오.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아서 그것만은 어떻게든지 있었으면 한다. 여기서는 여러 가지를 그릴 수 있다. 곰곰 생각해 보니 나의 작품이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책이다. 다른 일은 다른 사람에 비하여 너무나도 뒤떨어진다. 다른 재능이 나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로서도 어쩔 수 없다.

오히려 일을 하지 않거나 일을 줄이면 배의 비용이 든다. 그것만을 마음에 두고 있다. 당연히 걸어가야 할 길인 일 이외의 길을 찾다가는 결국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런데 내가 일을 하고 있으면 이 곳 사람들은 내가 일부러 찾아가지 않더라도, 또한 애써 알려고 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우리 집을 방문하게 된다.


이처럼 일을 하고 있으면 자연적으로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너 자신이나 조도 그렇게 생각하리라고 여겨진다. 내 병에 대해서는 어떻게도 할 수 없다 - 이 며칠은 조금 고통을 느끼고 있을 따름이다. 오랜 칩거생활 뒤는 하루하루가 몇 주일처럼 길게 느껴진다.

파리에 있었을 때나 여기서도 마찬가지지만, 일이 다소 진전되기 때문에 안정은 되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여튼 돌아온 것을 후회하지 않으며, 여기서 차츰 좋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가까운 장래에 가족과 함께 네가 일요일에 와 준다면 기쁘겠다.

전원이나 그 문화를 알기 위해서는 다른 고장을 보는 도리밖에 없다.


근대식으로 지은 독채도, 상류층의 별장도, 폐허로 된 낡은 초가집도 다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드비니 부인과 도미에 부인이 아직 이 곳에 살고 있다고 들었는데, 적어도 드비니 부인 쪽은 분명히 여기에 있는 모양이다.

네 사정이 허락한다면 바르그의 <목판화 연습>을 잠시 빌려다오. 아무래도 필요할 것 같다. 베껴서 모사를 가지고 있고 싶다.


네게 마음으로부터 악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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