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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안미숙_게시판

아버지~

아버지~~~~~~~~~~~~김용택



.. 아버지,
봄엔 고추거름 지고 가셔서
한 해 묵은 나무 지고 오시고
그 멀고 험헌 큰골 작은골에서
저 들까지 풀 져 나르시고
여름엔 빈 지게로 가셔서
풀 한 짐 가득 베어 오시고
가을엔 보릿거름 지고 가셔서
나락 한 짐 지고 오시고
겨울엔 빈 지게로 가셔서
나무 한 짐 지고 오시고
달 뜨면 밤나락
새벽엔 보릿짐 깔짐
그렇게 아침 저녁 밤낮으로 오가시며
짐 지고 보내신 한평생
길바닥에 돌부리 하나
길가에 풀 한 포긴들
마음 주지 않은 것 있었습니까.
지금 그 강길을 어머님 홀로 걸으십니다.
내 철없던 날들,
땅이 꺼지게 짐 진 아버지를
강길에서 만나면
내 가슴은 천근 만근 무거웠고
짐 진 아버지를 따르며
나는 괴로웠습니다.
내가 철이 들어
아버지 짐을 받아 지고 걸으며
아버지,아버지의 삶은 결코
억울하고 뼈아픈 삶만은
아니라는 것을 믿게 되고
아버지와 같이
마음 편하게 강가에 앉아 땀 식히며
물끄러미 바라 보시던 저 강물을
나도 따라 보며
그 끝 모를 아버지 삶의 깊이를 재고
흐를수록 깊어지고
흐를수록 넓어지는 강물의
가장 밑바닥에서 나는
사랑과 평화와 믿음
알 수 없는 자유의 무서움으로 깨어나며
발 디딜 곳 없는
강변의 풀꽃들을 바라보며
눈부셔했습니다.
아버지,
때로 나는 이렇게 해가 지는
강물을 따라 걸으며
흘러가고 흘러오는 강물을 보며
누구나 한번 오면 가기 마련이다,
사람이 살았달 것이 없능 것이여,
사람 세상 사는 일이 금방이여,
너무 서러워들 말라시며
마지막으로 우리들을 올려다보시던
그 평안한 눈길을 생각하며
나는 이따금씩 새로움으로
이 산천을 둘러보곤 합니다.
아버지,
숨결 멀어지시던 당신의 머리맡에
온갖 세상사가 다 무슨 소용이었겠습니까.
사는 것이 무엇이며
사람의 목숨으로
무엇을 이룬다 하겠습니까.
다만,
죽음 또한 삶의 한 일이어서
아버님이 몸 비벼 살아오신
이 작디작은 마을의 논과 밭과
아름답고 슬픈 강산이
이렇게 남겨짐을 보았습니다.
아버지,
아버님은 지금도 저기 저 강변길에
풀바작 지고 소 앞세우고
아침 저녁으로
오고 가십니다.

아버지,
돌덩이같이 차거운
아버님의 이마를 만지며
나는 울었습니다.

아버지,
아직 노을이 논 귀퉁이에 남았습니다.
들을 뜨지 마십시오.
아버지께서 흙 두들겨 뿌려논 보리들이
불쌍한 보릿잎들이 바람을 탑니다.
오냐, 내 아들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봄과 겨울이 골백번 바뀐들
내가 죽었다 한들
이 들을 어찌 뜨겠느냐.
내가 죽어도
내가 설 땅이, 내가 눌 땅이, 내가 쥘 흙이
여기말고
이 흙말고 해 아래
어디 또 있겠느냐
내가 이 땅의 임자이니라.
아버지,
노을은 점점 사위고
산 사람인 내가 논두렁을 일어서서
산의 어깨를 내려와
들 끝에서 밀려오는 어둠에 젖습니다.
어둠에 촉촉히 젖으며 나는
비로소
아버님의 논에 뿌리 내리고
어머님의 강물에 가 젖습니다.
어두워져 오는 강물을 보며
서늘하게 개어오는
이 맑은 피로
눈뜹니다.
아버지와 아버지들이 살아오신
저 수천 년 끈질긴 삶을 밟고 디디며
아름답게 살아오신
당신들이 그 깨끗한 생명은
죽어도 죽지 않고
이 산천에 늘 새롭게 되살아남을 봅니다.

아버지, 어둠이 짙어지고
들판을 펼치며
우뚝 솟아오르는
깃 치는 화문산을 봅니다.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몸부림치고 외치고 싶은 것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가지신 것 없이
아버님은 가셨으나
저 논밭 또한
이렇게 내 앞에 남았습니다.
사람 하는 일이 맘과 뜻대로 되지 않고
사람 사는 일이 억지로는 되지 않아
금방 무덤 하나를 이루는 일일지라도
우리 논밭을 지키며
아이고 내 가슴이야,
아이고 나 죽것네 어머니!
어머니 외쳐 부르며
마지막 몸부림하시던
아버님의 몸부림이
저 빈 들에 우리들의 몸부림으로
내 몸에 감깁니다.
이 겨레가 생긴 이래
의인들이 목숨을 던져
나라를 지킬 때
아버님들은 이땅의 논밭에서
곡식으로 나라를 지키며
의롭게 싸우셨습니다.
아버지,
이 따의 의로운 이들의 무덤은
아버님으 무덤처럼
아직 이름없이 남아
이 땅을 이 땅으로 지키십니다.

이제 날이 저물고
저녁 연기 오르며
산자락에 불꽃들이 살아납니다.
어머님의 솥뚜껑 여닫는 소리가 들리며
밥 냄새가 코끝을 스쳐
나는 배고 고파옵니다.
이맘때쯤,
어머님은 어디서 워낭소리만 들려도
징검다리에 나뭇짐만 보아도
허드렛물을 논배미에 버리며
앞산 앞내를 보며
아버님을 얼마나 그리워 할까요.
아버지,
사람이 한번은 누구나 왔다가 갈 길일지라도
어머님은 남은 평생 잇성 어버님이 걸리시고,
자게 작대기 하나만 치우시다가도
아버님을 생각하실 것입니다.
모든 이야기들이
아버지에서 시작되고 이어지며
아버지로 끝나고, 끝에서는
또 얼마나 긴 한숨을 몰아쉴까요.
논밭 가는 곳마다 아버님의 흔적들,
묶어놓고 베어놓은
나무며 풀주먹들
일하다 함께 앉아 쉬던 밭 가 바위들이며 밤나무 밑
논밭 귀퉁이
애지중지 가꿔논
애송 감나무와 밤나무들
감 밤이 주렁주렁 열리면
어머님은 일손을 놓고
또 얼마나 목이 메어할까요.
논물 풀물 든 아버지의 헌 옷가지들을 보시며
이런 일 저런 일들을 떠올릴까요.
아버지,
아버지 부르면
목이 메고
눈물이 솟는
내 곁의 착한 누이들과 아우들이
이렇게 어머니 곁에 남았습니다.

담배가 떨어져도
담배 살 돈이 없어
아버님은 어둔 새벽녘
할머님에게 가만가만 가셔서
써록초를 아무도 몰래 얻어 와
문풍지나 신문지,우리들의 학습장 찢어진 헌 종이로
담배를 말아 피우시며
이 궁리 저 궁리
이 걱정 저 걱정으로
날 밝기를 기다리시다가
창호지 문이 번해지기가 무섭게
새벽 일을 나가시던
아버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어머님은 아버지 영호에
담배를 태워 놓으시며
눈물바람을 하시곤 합니다.
아버지,
아버님이 살아나오신 세상의 굽이굽이가
어찌 그 일 하나만으로만 서럽겠습니까.
그리고 또 어찌
아버님만 그러셨겠습니까.
저 앞산 앞내와 전답들이
끝없이 슬픔이 솟아나는
서러운 땅입니다.

어느 봄날
아버지가 점심때가 되었어도 오시지 않아
나는 주전자에 라면을 끓여
뒷산 허리를 돌아
아버님이 지금 묻히신
솔나무 숲에 갔었지요
깊은 산 속
솔나무 아래 진달래 곱게 피어 봄불처럼 타는데
아버님은
나뭇짐 아래 앉아
담배를 태우고 계셨습니다.
아버지,
그 산 속 아버님이
라면을 훌훌 드시며
식은땀을 흘리시던
당신의 몸뚱어리, 빚으로
골병들어버린 당신의 외로운 몸과 마음을 보며
먼 산빛을 보며
진달래꽃 가지를 툭툭 부러뜨리며
나는 울었습니다 아버지.

글은 혀서 뭣헐 거냐
시가 다 뭣이다냐
이 나라 대대손손
글 배운 자들이
이 땅에 저질러지는 일이 대체 무엇이며
이 나라 백성들에게 한 일이 뭣 있냐
다 헛짖이다 헛짓이여!
호령하시며
땅을 쿵쿵 찍고
산 같은 짐을 지고
산길을 내려오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아버지 일어서십시요
아버님들이 짊어지신 당신들의 땅을 짊어지고
벌떡
저 저문 산처럼 일어서십시오
아버님이 살아생전
새벽 산빛을 깨치며
아침을 데리고 산길을 걸어오시고
산굽이를 돌아오시던 것처럼
한번만, 다시 한번만 강을 건너십시오.
그러면 이 땅에
버릴 것과 남을 것이
추려지고 가려져
저 강물에 뜨고
곡식 자랄 아버님의 땅만 남을 것입니다.
아버지,
그리운 아버지의 땅을 찍어 일구겠습니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솟을 때까지
아버지의 땅울림이
쩌렁쩌렁 이 땅에 끝까지 울릴 때까지.
그러면 아버지
지금 저기 핀
아버지의 몸과 마음을 스친 풀꽃을
꽃이라 부르겠지요.
이 땅 끝, 끝까지
저 하늘, 저 끝까지
아버님의 땅임을 보겠지요.
그날,
그날이 올 것을 나는 믿습니다 아버지.

몸이 아파서야
아스팔트 길도 달려보시고
택시도 타보시고
이층도 올라가보신 아버지
아버님이 죽어 짊어지신 땅
아버님이 짊어지고 다니시던 이 나라
비로소 나는
죽어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의 세상을 봅니다.
아버지,
아버지 가 계신 곳은
춥지 않는 곳이었슴 좋겟어요.
어둡지 않는 곳
배고프지 않는 곳
동족간에 총부리를 맞대고 으르렁거리지 않는 곳
한 해 농사 지어 공판하면서
수매갑을 빚으로 다 까버리는
그런 서러운 곳이 아니었슴 좋겠습니다.


산 보면
산이 나 같고
내가 산 같고
들 보면 들이 나 같고
내가 들 같고
물 보면
물 또한 그래서
모두 하나같이 나 같은 땅.

아버지,
온몸으로 살아오신
이 작은 강변 마을
굽이굽이 물소리 높고 낮으며
골짜기 골짜기마다 철철이 꽃 피는 곳
강길 산길 따라 굽이굽이 논밭길
수수익고 감자익고
보리 익고 벼 익는 길
늘 기쁨과 서러움이 새로 태어나는 길
늘 걸어도 늘 그립고 정다운
동구길 느티나무 아래
우리집이 보이는 곳
불빛을 따라
오늘도 나는 어두워 들어서며
새로 아버지의 세상에 태어납니다.

※김용택 시인
---전북 임실 출생/순창 농림고 졸업/1982년 창작과비평사의'21인 신작시집'에 [섬진강1]등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시작/1985년 첫시집[섬진강]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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