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그리움 혹은 꿈의 껍질
1. 걸어 다니는 날개를 보셨나요. 하늘을 두고 날지 못 하는 새. 양계장에서 지금 막 인공부화 되는 새. 먹이사슬에 걸려 온종일 거리를 떠돌며 다리를 저는 새. 산그늘이 황량한 도시에 내리면 밤마다 어느 섬을 나는 꿈을 꾸지요. 그리움 혹은 꿈의 껍질. 2. 새로운 생으로 가는 목숨 하나. 오늘을 사는 몸부림을 뒷세상의 가슴에 품는다. 아른아른 어리는 말간 핏줄, 따스한 알 다시 태어나기를 꿈꾼다. 네가 있기 전에는 산도 나무도 꽃도 싹 틔우지 않았듯이, 물결소리 바람소리 흐르지 않았듯이, 슬픔도 기쁨도 없었듯이, 낯선 길은 지상의 말로 다 그릴 수 없는 세상이다. 너를 옥죄이는 육신, 더 잃을 게 없는 빈 손, 빈 가슴이 되었을 때, 물결빛 눈물 얼룩 찬란히 털며, 환한 어둠의 도가니, 바위 껍질 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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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헤는 밤 -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異國少女)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어 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짬, 라이너 마리아 릴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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