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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준/김낙준

2001 제8회 신세계 갤러리 기획초대전 - 미술세계 4월호



솟대를 통하여 요추(要樞)한 인간과 소외
 

2001. 3. 2 ∼ 3. 11 / 인천 신세계갤러리 기획초대전

이번 개인전에서 김낙준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솟대라는 한국 전통의 소재를 통하여 나타낸 현대사회에서의 인간의 소외와 고독이다. 그 솟대라는 대상은 우리 민족이 과거급제와 같은 경사가 있을 때 마을 어귀에 세워두던 상징물로써 매우 상서로운 징표이다. 그러나 그의 관심사는 이러한 의미보다는 잊혀져 가는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의 표명과 계몽이다. 아울러 면(面)에서 선(線)으로 옮아가는 그의 조형적 관심을 충족시키기에 가장 적합한 대상이기도하다. 결국 큰 맥락에서 이번 전시회 역시 그간의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그의 작품은 전통과 현대, 동적인 것과 정적인 것, 단순성과 복잡성 등 여러 상충되는 개념들이 상호보완적으로 공존하는 독특한 질서체계를 보여준다. 주지하다시피 김낙준을 끊임없이 사유케 만든 형식언어가 점·선·면이다. 그간 그의 작업은 면을 주조(主調)로 한 내부형(內部形)과 구조형(構造形) 그리고 시각형(視覺形)의 문제를 파악한 매체와 기법, 색채를 사용하여 시각화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근자에 이르러 그는 형상언어를 면에서 선으로 바꾸어 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말하자면 그의 표현 과정 면에서 선으로, 선에서 점으로 역행하는 셈이 된다. 이때의 선은 대상의 윤곽선으로서의 선이라기보다는 형태를 내로부터 규정할 뿐 아니라, 선 자체로서 형태를 결정하는 대상으로서의 선이다. 말하자면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의 현대적 변용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김낙준은 작품제작에 있어 모델링 보다는 절단, 절곡(折曲), 용접을 통하여 보다 다이나믹하고 자연스런 형태를 지향한다. 이 점은 철 조각에 천착하는 대다수의 작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보여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는 통쇠(iron)를 이용함으로써 작품에 생경한 아름다움을 줄 뿐 아니라 철재가 지닌 고유한 색감마저도 차용하는 여유로움을 보여주고 있다. 이 점이 최근에 이르러 그의 작품에서 가장 뚜렷이 간취(看取)할 수 있는 변화의 조짐이다. 아울러 이전의 다채로운 형식언어들을 폐기하고 추상적이고 함축된 조형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그가 어떤 방식으로 선에서 점으로 전이해나갈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이렇게 일관된 내용을 고집하면서도 고정된 형식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양면성은 그의 체질이자 작가정신의 일면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그의 작업을 대하다보면 어느덧 '무엇'을 표현했는가의 문제보다는 '어떻게'표현했는가의 문제가 주된 관심으로 떠오르게 됨은 조각가로서의 그의 장인적 기질이 남다르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글 이경모(미술평론가) 2001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