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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명화

미개한 이야기 더보기
어마, 질투하고 있니? 1892년 7월 고갱은 몽프레에게 '나는 최근 모델없이 나체화를 한 장 그렸다. 물가에 두 여인이 있는 그림이다. 지금까지 그린 것 중에서 가장 좋은 작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라고 쓰여 있다. 바로 이 그림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샤를르 모리스는 이 정경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수영(水永)을 하러 온 두 자매가 더운데도 동물과도 같이 우아하게, 싱싱하게 몸뚱이를 뻗 치고 중얼중얼하며 지금까지의, 또 지금부터의 연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돌연 말다툼이 벌어진다. 뭔가를 생각해 낸 것이다. 어마, 질투하고 있니?' 이 대담한 구도에 두 인물의 누움과 앉음의 배치, 양광(陽光)과 음영(陰影)의 배치에서 뭔가 비밀스러운 회화(會話)를 누구나 상상 해 낼 수 있을 것이다. 타히티란 한 원시적인 낙원에 .. 더보기
황색의 그리스도가 있는 自畵像 황색의 그리스도가 있는 自畵像 더보기
야회복을 입은 메트 고갱 고갱은 1873년 11월, 23살의 덴마크 여성 메트와 결혼 했다. 결혼 전 어느 편지에서 그녀의 강한 성격과 고귀한 감정에 대하여 '이렇게 아름다운 진주를 덴마크로부터 뺏어 오기 위하여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할 작정입니다.' 고 했지만, 결혼 후 북구(北區)의 프로테스 탄트풍(風)의 엄격한 윤리관에 젖어 있는 그녀와 고갱과의 생활은순탄하지 않았다. 만약 그녀의 남편이 고갱 이외의 다른 남자였다면 훌륭한 부인으로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고갱이 고갱 자신으로 돌아 감에 따라 그녀도 자신을 드러내어 자제하지를 못하였다. 이 작품은 그가 본격적인 화가가 되겠다는결심으로, 베르탕 상점을 그만둔 다음 해에르왕에서 그린 것인데, 인상파적인 수법으로 그녀의 그런 기질(氣質)을 잘 나타내고있다. 초상화.. 더보기
목욕하는 브르타뉴의 아이들 '나는 막 나체화(裸體畵) 몇 개 끝맺었다. 이것들의 됨됨이에는 자네도 만족하여 줄줄믿는다. 이것은 드가풍의 하찮은 것은 아니란다. 가장 최근의 것은 개울가에서 두 아이들이 엉켜 있는 것을 그렸는데, 이것은 페루의 야만인이 그린 실로 일본적(日本的)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1888년7월 8일 슈프네 케르에게 보낸 편지). 이 작품도 고갱이 말하고 있는 나체의 연작 중의하나일 것이다. 기독교인으로서 부인 메트가 싫어했기 때문에, 앞에 소개한 외에 나체화가 없었으나, 브르타뉴의 자연 속에서 그의 내면에 마르티니그나 페루의 추억에 잠겨 그의 정신적인 이미지에 순도를 더해갔다. 샛노란 풀잎의 색과 배경의 빨간색에서 그의 내면의 반영을 느낄 수있다. 브르타뉴에서 차츰 그느 피사로의 영향을 벗어나, .. 더보기
나부습작 고갱은 일요화가(日曜畵家)로서 코로나 쿠르베의 영향에 의한 그림을 그리다가, 1874년 피사로와 만나 차츰 당시의 파리 화단에 물결치고 있던 인상파(印象派)의 화론(畵論)에 공감하여 갔다. 이 작품은 1881년 제6회 인상파전(印象派展)에 출품되었는데, 그때 유이스만스의 격찬을 받아 하나의 일요화가에 지나지 않던 고갱의 이름을 크게 높이는데 성공한 그림이다.유이스만스는 '조금 부풀은 듯한 허벅지에 이어져 있는 하복부나 그늘진 으슥하게 된 둥근 유방 아래의 잔주름, 다소 메마른 무릎의 관절이나, 손목의 볼쏙한 부분 등은 얼마나 많은 진실이 담겨져 있는 것이겠느냐'라고 했지만, 확실히 여기에는 알몸 그 자체에 접근 하려는 일종의 생생한 욕구가 느껴진다. 그림의 모델은 고갱 집의 가정부로서 젊을 때엔 들라크로.. 더보기
빨간 깔개 위에 앉은 소녀 '예술 작품은 결정(結晶)같은 것이다. 결정과 마찬가 지로 예술 작품도 역시 영혼과 광휘(光輝)를 내뿜는 힘을 가져야 한다. 예술 작품에서는 정확한 외관(外 觀)의 면(面)이나 선(線)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뭉크는 글에서 밝히고 있다. 이런 주장을 내세울 무렵 그의 나이는 66세(1929년)로서 에에켈리에 겨울 아틀 리에를 짓고 만년을 보내면서 고독과 쇠약해진 건강과 의 고투 속에 있었다. 외로움을 달래면서 제작을 하게 되는 가운데 내적 상태가 표면에 드러나게 된다. 청순 한 여인이 벌거벗은 채 빨간 깔개 위에 손을 짚고, 두 다리를 편하게 뻗고 휴식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도 붉은 색면이 강렬하다. 회화의 형식으로서의 붉은 색채가 아니라, 지향하는 욕구로서의 정신을 존재시켜 주는 독특한형상을 느끼게 .. 더보기
빨간 덩굴풀 노르웨이 풍경 중에서도 특히 오슬로 시가와 오스가르 스트란드의 바닷가 풍경에서 뭉크는 정신적인 생명감 을 표현하였으며, 자연을 통해 외로운 감정을 불러일 으키기보다는 자연 속의 분위기를 찾아냈던 것이다. 이 작품을 제작한 해가 1900년으로서 이 때에는 베를 린 화단을 중심으로 활약하였는데 문인과의 교류가 왕 성하였으며, 한편 뭉크의 주관성의 강조가 고호 등과 함께 포비즘이나 표현주의에 많은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화면 중심부에서 약간 휜 듯한 수직적인 나무와 불규칙한 듯한 울타리의 직선적 효과가 중앙 건물 덩굴풀의 빨간색의 강렬함과 상호 대립을 가지면서도 공간 변화를 강하 게 주고 있다. 원근법의 강조, 불규칙한 형태 변화, 주관성에 의한 곡선 표현과, 정면을 바라보 는 인물의 심리 상태로 뭉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