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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안미숙_게시판

고흐의 가족 친척 이웃들 고흐의 부모 테오도루스 반 고흐(1822년생)는 안나 카르벤투스(1819년생)와 결혼했다. 테오도루스 반 고흐는 '잘 생긴 남자'로 통했으며, 온화한 성격을 가진 평범한 목사였다. 서적 판매상의 딸이었던 안나 카르벤투스는 친절하고 존경받는 여자였다. 그러나 그녀는 장남 고흐의 까다로운 성격을 이해하지 못했다. 부모에게서 인정받기를 무척이나 갈구했던 고흐는 자신들의 계급과 시대에 충실한 이 전형적인 부모에게 골치거리였다. 고흐의 형제와 누이들 고흐의 여동생 안나는 고흐보다 두 살 아래였다. 고흐는 안나와 영국에서 같이 일할 때 처음에는 사이좋게 지냈다. 안나보다 두 살 아래가 테오였고 다시 두살 아래가 엘리자베스였다. 테오는 고흐의 일생동안 친구이자 동반자였으며, 고흐의 정신적, 물질적 지주가 되었다. 그.. 더보기
고흐의 삶-다섯번째 이야기 ◆ 고흐의 삶 - 다섯번째 이야기 (5/5) ◆ 고흐는 그 정신병원에 12개월 동안 갇혀 있으면서 되풀이되는 발작에 시달리고 평온한 기분과 절망적인 기분사이를 오락가락하면서도 이따금 그림을 그렸다. '정신병원의 정원', '알피유 가족', 의사들의 초상화, 렘브란트, 들라크루아, 밀레의 그림들을 본뜬 모작 등 이 시기(1889~90)에 그의 작품을 지배한 주된 특징은 현실과 격리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일종의 슬픔이다. 오랫동안 정신병원의 독방이나 정원에 갇혀있었기 때문에 주제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는 데다 자신의 영감이 직접적인 관찰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억을 되살려 그림을 그려야 하는 현실과 맞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지난 여름에 사용했던 강렬한 색채를 부드럽게 만들고 좀더 차분한 .. 더보기
고흐의 삶-네번째 이야기 고흐의 삶 - 네번째 이야기 (4/5) ◆ 그후 12개월 동안 (첫번째 전성기)에 그린 그림에서 그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뚜렷한 윤곽과 강렬한 색채의 효과를 통하여 주제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하려고 애썼다. 그림에 대한 그의 관점은 표현주의적인 동시에 상징주의적이었지만 그가 그림을 그리는 방법은 치밀한 계산에 따른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고도 본능적인 것이었다. 그는 어떤 효과나 분위기가 자기를 사로잡고 있는 동안 그것을 포착하기 위하여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격렬하게 일했다. 그가 아를에서 다룬 주제들은 꽃이 핀 과일나무, 마을과 그 주변풍경, 자화상, 우편배달부 룰랭과 그의 가족 및 다른 친구들의 초상화, 집의 안팎, 해바라기 연작, '별이 빛나는 밤' 등이다. 고흐는 그림에 .. 더보기
고흐의 삶-세번째 이야기 고흐의 삶 - 세번째 이야기 (3/5) ◆ 루벤스의 단순한 표현수단, 솔직한 표현 방법, 색채들을 결합하여 분위기를 표현하는 능력 등은 고흐에게 결정적인 영감을 주었다. 같은 시기에 고흐는 일본 판화와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발견했다. 전통적 아카데미 화풍의 원칙에 따르기를 거부했던 그는 자신이 다니고 있던 안트워프 아카데미에서 비난받기 일쑤였고, 3개월 뒤 1886년에 느닷없이 안트워프를 떠나 파리에 있는 동생 테오에게 갔다. 아직 습작에 전념하고 있던 반 고흐는 파리에서 툴루즈 로트레크와 고갱 등 근대 미술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화가들을 만났다. 그는 이들을 통하여 당시 프랑스 회화가 이룩한 발전에 눈을 떴다. 또한 테오는 구필 화랑에 있는 인상파 그림들을 그에게 보여주었고 피사로와 쇠라를.. 더보기
고흐의 삶-두번째 이야기 ◆ 고흐의 삶 - 두번째 이야기 (2/5) ◆ 고흐가 예술가로 활동한 기간은 1880~90년의 10년뿐이었고 처음 4년 동안은 기법을 익히면서 오로지 데생과 수채화에만 전념하다시피 했다. 먼저 브뤼셀 아카데미에 데생을 공부하러 갔다가 1881년 네덜란드 에텐에 있는 아버지의 목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뒤 자연의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반 고흐는 열심히 체계적으로 공부했지만, 곧 독학의 어려움을 느끼고 좀더 경험이 많은 예술가의 지도를 받고자 했다. 1881년 말 그는 헤이그에 정착하여 네덜란드 풍경화가 안톤 모베와 함께 일했다. 그는 미술관을 찾아다니고 다른 화가들과 자주 만나 기법에 대한 지식을 넓혔으며, 1882년 여름에는 유화를 시도했다. 1883년 자연 속에 홀로 있고 싶은 충동과 농부들을 그리고 .. 더보기
고흐의 삶-첫번째 이야기 ◆ 고흐의 삶 - 첫번째 이야기 (1/5) ◆ 개신교 목사의 6남매 가운데 맏아들인 반 고흐는 네덜란드 남부 브라반트 지방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 아버지의 목사관에서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보낸 그는 시골 들판을 정처 없이 돌아다니기를 좋아했다 16세 때 숙부가 일하고 있는 구필 화랑의 헤이그 지점에 수습사원으로 들어갔다. 1873~75년 5월까지는 런던에서, 1876년 4월까지는 파리의 구필 화랑에서 일했다. 날마다 예술 작품과 접하면서 예술적 감수성을 일깨울 수 있었고, 곧 렘브란트와 할스를 비롯한 네덜란드 화가들을 좋아하게 되었지만 그가 가장 좋아한 화가는 당시 작품활동을 하고 있던 프랑스 화가 밀레와 코로였고 평생 이 두 화가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미술품 거래를 싫어한데다가 1874.. 더보기
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모른다 그리하여 이 시대 나는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나 창자를 뒤집어 보여줘야 하나, 나도 너처럼 썩었다고 적당히 시커멓고 적당히 순결하다고 버티어온 세월의 굽이만큼 마디마디 꼬여 있다고 그러나 심장 한귀퉁은 제법 시퍼렇게 뛰고 있다고 동맥에서 흐르는 피만큼은 세상 모르게 깨끗하다고 은근히 힘을 줘서 이야기해야 하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나도 충분히 부끄러워할 줄 안다고 그때마다 믿어달라고, 네 손을 내 가슴에 얹어줘야하나 내게 일어난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두 팔과 두 다리는 악마처럼 튼튼하다고 그처럼 여러번 곱씹은 치욕과, 치욕 뒤의 입가심 같은 위로와 자위 끝의 허망한 한모금 니코틴의 깊은 맛을 어떻게 너에게 말해야 하나 양치질할 때마다 곰삭은 가래를 뱉어낸다고 상처가 치통처럼, 코딱지처럼 몸에 붙어 있.. 더보기
운주사 와불 운주사 와불 전라남도 화순군 운주사 주위 산정상에 있다. 이 와불(2구)과 관련된 전설에 의하면, 우리 나라의 형국은 전체가 배로 되어 있는데 북쪽은 큰 산이 많아 무겁고, 남쪽은 큰 산이 적어서 가벼워 배의 균형이 잘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절에 천불천탑을 세워 균형을 잡으면 이 탑들은 돛대가 되고, 많은 부처는 사공이 되어 순항한다고 한다. 도선국사가 천불천탑을 하루 낮밤에 세우는데 마지막에 이 두 부처를 세우기 전에 날이 새, 와불로 남게 되었다고도 한다. 본존의 길이가 12미터나 되는 이 독특한 와불은 실제로 누워있는 것이 아니라 서 있는 모습이다. 혹자는 이 운주사 천불천탑동의 엄청난 불사를 최씨 무인정권이 이룩한 팔만대장경의 불사와 비슷한 것으로 보기도 하는데, 중앙미술의 세련미,.. 더보기